늘어나는 아파트 하자, 원인은 어디에 있나

늘어나는 아파트 하자, 원인은 어디에 있나
1. 늘어나는 아파트 하자
아파트 하자가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하심위)가 하자로 판정한 아파트 사건은 2022년 285건에서 2025년 680건으로 3년 만에 2.4배가 됐다.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판정은 1,952건, 연립·다세대·주상복합 등을 합친 집합건물 전체로 넓히면 4,155건에 이른다.
건설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날림공사가 늘어났을까? 일각에서는 신청 자체가 늘어난 결과라고 본다. 실제로 하자심사 신청은 같은 기간 1,144건에서 3,442건으로 세 배 늘었다. 제도가 알려지면서 문을 두드리는 입주민이 많아졌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청이 늘어난 만큼 판정이 늘었다 해도, 한 해 680건의 하자가 공식 인정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680건은 입주민의 불만이 아니라 전문가 위원회가 "하자가 맞다"고 인정한 숫자다.

하자의 유형을 보면 기초 품질관리가 흔들리고 있음이 드러난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30개사 단지에서 하자로 판정된 세부사건 2,565건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결로(636건)였고, 기능불량(393건), 타일·도배·바닥재의 들뜸과 탈락(379건), 누수(214건)가 뒤를 이었다. 단열, 설비, 마감. 입주민이 매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는 부분이다.
추세도 의미심장하다. 결로 판정은 2022년 294건에서 2025년 77건으로 꾸준히 줄었다. 반면 2024년 한 해만 보면 들뜸·탈락 판정(178건)이 결로(120건)를 앞질렀다. 하자의 무게중심이 마감 공정으로 옮겨 가고 있다. 브랜드 프리미엄을 내세우는 대형 건설사에서 이런 기초 품질이 흔들린다는 점이 더 불안하다.
그런데 언론은 주로 하자 이후를 다룬다. 입주민과 건설사의 갈등, 판정 범위를 넘어선 보수 요구, 심사 절차가 단골 주제다. 모두 필요한 이야기지만, 정작 하자가 왜 늘었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원인은 크게 세 갈래다. 사람, 시간과 돈, 그리고 감시.

2. 원인 ①: 숙련이 쌓이지 않는 현장
건설 현장은 오래전부터 숙련공 부족을 겪어 왔다. 청년 유입은 끊기고, 현장을 지켜 온 기능인력은 고령화됐다. 빈자리는 외국인 근로자가 채웠다. 공식 통계보다 실제 비중이 훨씬 높다는 말이 현장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문제는 국적이 아니라 숙련이 축적되지 않는 구조다. 고용허가제(E-9)나 방문취업(H-2)으로 들어온 인력은 기본 3년, 연장해도 5년이 채 안 되는 기간만 머문다. 손에 기술이 붙을 즈음 떠난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외국인 근로자가 숙련공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0%에도 못 미친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언어 장벽이 더해진다. 건설 현장 조사 연구에서도 외국인 기능인력 관련 문제 가운데 의사소통 장애와 기능 수준이 31.4%로 가장 많이 꼽혔고, 기능 수준 문제는 내국인의 3배를 넘었다. 도면 해석과 공종 간 협의가 필요한 마감 작업에서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현장은 늘 초보 인력을 새로 받아 가르치는 일을 되풀이한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숙련에 투자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품질이 나오지 않는다.

3. 원인 ②: 시간과 돈이 마감을 밀어낸다
2020년대 초 원자재값과 인건비가 급등했고, 고금리가 이어졌다. 개발사업은 토지 매입부터 브릿지론과 PF 대출로 굴러간다. 공기가 늘어질수록 이자가 쌓이니, 입주 날짜를 지키는 일이 품질보다 앞서기 쉽다.
공기 압박은 결국 마감 단계에서 터진다. 골조가 늦어지면 잃어버린 시간은 준공 직전으로 몰린다. 원래 미장, 타일, 도배, 가구, 전기, 설비가 순서대로 들어가야 하지만, 입주가 코앞이면 한 세대에 대여섯 공종이 동시에 들어간다. 먼저 붙인 타일과 마루가 다음 작업자의 발과 장비에 긁히고, 보양도 없이 작업이 이어진다. 2020년 한국건축시공학회지에 실린 연구도 입주 전 마감 하자 가운데 파손의 주된 원인을 후속 공종의 부주의로 분석했다. 들뜸, 오염, 스크래치 판정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골조 쪽에서는 우천 타설이 대표적 문제로 꼽혀 왔다. 빗물이 섞이면 물-시멘트비가 흐트러져 강도가 떨어지고 균열 위험이 커진다. 정부는 2025년 1월부터 콘크리트 표준시방서를 고쳐 비가 올 때 타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시간당 3mm 이하일 때만 감리 승인 아래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별도 기준이 필요했을 만큼 흔한 관행이었다는 방증이다. 이제 관건은 현장에서 그 기준이 지켜지느냐다.
4. 원인 ③: 감시가 작동하지 않는 구조
다단계 하도급. 원청이 전문건설업체에 공종을 맡기고, 그 업체가 다시 작업팀에 넘기는 구조에서는 단계마다 비용이 빠진다. 말단 작업팀에 닿는 노무비와 자재비가 모자라면 싼 자재, 짧은 양생, 저임금 인력이라는 유혹이 커진다.
감리의 독립성. 감리는 부실을 막는 마지막 관문이지만, 감리비의 원천이 사업주체라는 구조적 한계가 오래 지적돼 왔다. 공사 중지나 재시공 명령처럼 공기를 늦추는 권한을 꺼내 들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용검사와 하자 판정의 틈. 사용검사는 설계대로 지었는지를 주로 확인할 뿐, 마감 완성도까지 세밀하게 걸러내기 어렵다. 하자가 생긴 시점과 원인을 가리는 기준도 분쟁 때마다 다툼거리가 된다. 판정 이후 보수를 둘러싼 2차 분쟁이 길어지는 배경이다.

5. 이제는 하자 관리도 경쟁력이다
지금까지 짚은 원인은 한국 건설업에 오래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다. 하루아침에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기에 나타난 현상을 두고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구조가 바뀌기 전까지는 드러난 하자를 정밀하게 기록하고 분석해, 각 주체에게 책임이 지워지는 것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하자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 2024년 1분기 도급순위 상위 10개 건설사가 하자보수에 쓴 돈은 1,438억 원, 앞으로 쓸 비용으로 쌓아 둔 하자보수 충당부채는 2조 7,340억 원이었다(사업보고서 기준, 도로·교량 등 인프라 포함). 2026년 1분기에도 공사손실 충당부채는 줄어든 반면 하자 관련 충당부채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자 순위가 공개되면서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에서도 품질 이력이 무기가 됐다.
하자심사 분쟁 조정위심위도 하자 사례를 공유하고 보수 관리 교육을 여는 등 역할을 넓히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건설사별 하자 순위에 판정 건수뿐 아니라 보수 완료율과 처리 기간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잘 짓는 것 뿐만 아니라 끝까지 고치는 일도 중요하다. 하자 관리 또한 경쟁력이다.
수주는 늘었는데, 건설사는 왜 문을 닫나
올해 상반기 국내 건설수주액은 116조 원이다. 1년 전보다 25.8% 늘었다〔대한건설협회 「국내건설수주동향조사」, 2026년 8월 공표〕. 같은 기간 건설사 폐업 신고는 2,092건이다. 1년 전 1,746건보다 19.8% 늘었다〔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수주도 늘고 폐업도 늘었다. 같은 산업, 같은 기간에서 나온 숫자다.
1. 같은 달에 발표된 두 통계
수주 쪽부터 보자. 116조 원은 2022년 상반기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그 이후로는 가장 많다. 안을 열어보면 공장·창고 수주가 역대 최대다. 반도체 공장 발주가 이 항목을 끌어올렸다〔한화투자증권 건설업종 보고서, 2026년 8월 26일〕.
폐업은 기간을 7월까지 넓히면 흐름이 더 분명해진다. 1~7월 폐업 신고는 2,530건으로 1년 전 2,025건보다 24.9% 늘었다. 종합건설업 477건, 전문건설업 2,053건이다. 7월 한 달에만 438건이다. 지역을 보면, 올 1분기부터 5월 말까지 폐업 신고 열 건 중 여섯 건이 비수도권에서 접수됐다〔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서울경제, 2026년 8월〕.
지방 현장의 체감은 폐업 통계 쪽에 가깝다. 분양이 안 되면 분양대금이 안 들어오고, 분양대금이 안 들어오면 공사대금도 못 준다. 지역 대표 건설사가 무너지면 그 아래 하도급 업체들이 함께 밀린다. 대구시가 신청 나흘 만에 협력업체 피해를 막겠다며 긴급 대응체계를 가동한 이유다〔아주경제·경향신문, 2026년 8월 25~26일〕. 두 통계 모두 맞다. 서로 다른 대상을 재고 있을 뿐이다.
2. 수주액은 계약 시점의 숫자다
건설수주액은 계약이 체결되면 바로 잡힌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자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 돈이 돌기 전에 이미 통계에 반영된다. 폐업은 반대다. 통장이 마른 다음에 신고된다.
수주가 착공으로 넘어가고, 착공이 기성금 청구로 이어지고, 기성금이 하도급 대금으로 내려가기까지 짧게는 몇 달, 대형 프로젝트라면 1년을 넘긴다. 116조 원은 앞으로 몇 년에 걸쳐 현장에 풀릴 돈이고, 2,092건은 이미 버티지 못한 회사들의 기록이다. 두 통계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찍은 사진이다. 수주 잔고가 두둑해도 착공이 안 되면 회사에 들어오는 돈은 없다.
그런데 시차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남는다. 116조 원이 시간이 지나 현장에 풀리기만 한다면, 지금 문을 닫는 회사들도 조금 더 버티면 되지 않나. 답은 간단하다. 그 돈이 그들에게 가지 않는다.
3. 파이는 커진 게 아니라, 옮겨갔다
늘어난 116조 원의 실체는 반도체 팹과 AI 데이터센터, 그리고 발전 설비다. 정부의 AI 데이터센터 로드맵은 2035년까지 18.4GW다. 1단계인 2029년까지의 8.4GW에만 약 550조 원이 들어가고, 10년 전체로는 1,000조 원 규모다. 반도체 쪽에서는 삼성전자 평택 P5 본공사와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1기 조기 구축이 진행 중이다. 용인 1기는 완공 목표가 2045년에서 2033년으로 당겨졌다〔이투데이 2026년 8월 29일, 시사저널e 2026년 7월 3일〕.
이 공사들은 전력 공사를 함께 부른다. 정부가 용인과 호남 팹에 공급하기로 한 전력만 20GW가 넘는다. 2040년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도 재추계 과정에서 27GW 가까이 올라갔다. 계획 자체는 연내 확정된다〔한국일보 2026년 8월 12일, 전기신문 2026년 8월 20일〕. 공장을 지으려면 발전소와 송배전 설비를 함께 지어야 한다. 수주 통계에서 공장·창고 항목이 역대 최대로 올라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주 실적에도 그대로 찍힌다. 삼성물산은 상반기 하이테크 부문에서만 6조 4,000억 원을 수주해 연간 목표 6조 8,000억 원에 근접했다. 현대건설은 상반기 22조 8,000억 원으로 연간 목표의 68.3%를 채웠고, 대우건설은 목표를 18조 원에서 27조 원으로 올렸다〔이투데이, 2026년 8월 29일〕.
관건은 진입 조건이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 원전은 클린룸 시공 이력, 대용량 전력 인프라 경험, 진동·하중 제어 설계 능력을 요구한다. 발주처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소수다. 민간 발주는 공개입찰보다 자체 협력사 등록과 계열 건설사를 거쳐 나
간다. 실적이 없으면 명단에 오르지 못한다.
반면 문을 닫은 2,530건 중 2,053건은 전문건설업체다. 이들이 일해온 시장은 주택 현장, 그중에서도 지방이었다. 7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6만 8,217호 가운데 71.5%가 지방에 있다. 다 지어놓고 못 판 준공 후 미분양으로 좁히면 지방 비중이 84.8%로 올라간다〔국토교통부 주택통계, 2026년 7월 말 기준〕.
새로 열린 시장에는 대형사가 들어가고, 무너지는 시장은 중소사가 지키고 있었다. 7월 미분양 증가분은 열에 아홉이 수도권에서 나왔다. 산업 전체의 일감은 늘었지만, 늘어난 일감과 줄어든 일감이 서로 다른 회사의 장부에 찍힌다.
4. 버티는 비용이 올랐다
원가와 금리는 이 격차를 더 벌린다. 건설공사비지수는 6월 138.22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다. 2020년을 100으로 잡은 지수이니 5년 반 만에 38% 오른 셈이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 2026년 6월 기준〕. 고강도 철근은 3월 고시 이후 3개월 동안 18.6% 올랐고〔파이낸셜뉴스, 2026년 7월 14일〕, 구리 가격은 1년 새 40% 넘게 뛰었다〔에너지경제, 2026년 8월 19일〕.
금리도 따라 올랐다. 한국은행은 8월 27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3.00%로 인상했다.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이다. 부동산 PF 연체율은 2025년 12월 3.88%에서 2026년 3월 4.65%로 다시 올랐고, 유의·부실우려로 분류된 PF 여신은 16조 4,000억 원이다〔금융감독원, 2026년 7월 3일 발표〕.
대형사는 이 부담을 자체 신용과 보유 현금으로 넘기지만 중소사는 넘기기 힘들다. 8월 31일부터 주택금융공사가 PF보증 비율을 90~95%에서 100%로 올리고 보증료를 최대 40% 감면한다. 2027년 말까지 한시 적용이다〔디지털타임스, 2026년 8월 31일〕. 자금 통로를 넓히는 조치이지만, 조달 금리 자체를 낮추지는 않는다.
5. 일감은 늘어도, 지을 힘은 줄고 있다
지금 무너지는 층은 전문건설업체다. 1~7월 폐업 2,530건 가운데 2,053건, 매달 290건꼴이다. 철근을 엮고 거푸집을 세우고 설비를 넣는 일은 이들이 한다. 원청이 어느 시장에서 일감을 따오든 실제로 짓는 쪽은 여기다.
업체는 늘었는데 일감이 줄었다. 전문건설업 계약실적은 2022년 121조 원에서 2024년 108조 원으로 2년 연속 줄었고, 업체당 평균은 2023년 17억 9,000만 원에서 2024년 16억 8,000만 원으로 내려갔다〔대한전문건설신문, 2026년 7월〕. 같은 파이를 더 많은 회사가 나눈다. 단가 경쟁만 남고, 그 끝에서 폐업 신고가 쌓인다.
물량은 예고돼 있다. 공공 부문에서는 2028년부터 연간 30조 원 규모의 주택 발주 계획이 나왔고,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물량도 이어진다. 다만 공공 발주는 아직 2년 뒤 일이고, 민간 대형 프로젝트는 인허가와 전력 공급이라는 외부 조건에 묶여 있다. 계획대로 열린다 해도, 그 물량을 실제로 받아낼 층의 체력이 지금 깎이는 중이다.
수요 없이 오른 가격 — 2026년 상반기 철근 시장 정리
수요 없이 오른 가격
2026년 상반기 철근 시장 정리
지난해 이맘때 철근 유통가격은 톤당 71만 원대였다. 업계가 꼽는 손익분기점은 75만 원. 팔수록 손해 보는 가격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같은 가격표는 87만 원을 가리킨다. 그사이 수요가 살아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격은 올랐다.
1. 2025년: 무너진 가격
2025년 철근 시장은 하락의 연속이었다. 연초부터 내리막을 탄 유통가격은 여름을 지나며 70만 원 초반까지 밀렸고, 11월 초에는 톤당 66만 원 안팎까지 내려앉았다. 연말까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원인은 유례없는 건설 불경기다. 2022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고금리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동산 개발사업 대출) 부실로 번졌고, 공사비는 치솟았다. 그 결과 착공이 끊겼다. 건축 착공면적은 2022년부터 해마다 줄어 2024년에는 10년 평균의 67.2%에 그쳤다. 착공이 없으면 골조가 없고, 골조가 없으면 철근이 팔리지 않는다. 철근은 건설경기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제강사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2025년 하반기 내내 감산으로 버텼다. 공장을 며칠씩 세우고 출하를 조이면 가격은 70만 원 중반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실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니 몇 주를 못 가 도로 미끄러졌다. 올리면 떨어지고, 다시 올리면 다시 떨어졌다.
2. 감산에서 폐쇄로: 시장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해가 바뀌자 대응의 성격이 달라졌다. 잠깐 세우는 감산이 아니라 설비를 아예 접기 시작했다.
1월 20일 현대제철은 인천공장의 90톤 전기로 제강 설비와 소형 압연 공장 폐쇄를 확정했다. 연간 생산능력 80만~90만 톤, 인천공장 철근 생산능력(약 160만 톤)의 절반이다. 폐쇄는 되돌리기 어렵다. 2위 동국제강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난해 12월 연산 220만 톤 규모의 두 라인을 열흘간 전면 중단했고, 지금도 생산능력을 100만 톤가량 줄여 운영하고 있다.
제강사들이 공장을 접은 이유는 숫자에 있다. 한국철강협회 집계로 철근 내수는 2022년 1,050만 톤에서 2023년 995만 톤, 2024년 797만 톤으로 줄었고, 2025년에는 11월까지 658만 톤에 그쳤다. 연간으로 환산해도 700만 톤 안팎이다〔한국철강협회, 2026.1〕. 국내 제강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1,230만~1,240만 톤으로 추산된다. 3년 만에 시장의 3분의 1이 사라졌고, 생산능력의 절반 가까이가 남아돌게 됐다.
3. 2026년: 이번에는 인상이 먹혔다
올해 철근 유통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1차 유통가격 기준으로 1월 톤당 70만 원이던 철근은 2월 75만 원, 3월 76만 6,000원, 4월 82만 5,000원, 5월 85만 원, 6월 87만 2,000원이 됐다〔철강금속신문, 2026〕. 반년 만에 24% 올랐다. 작년처럼 수요는 없는데,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인상이 먹혔다. 무엇이 달랐을까.
첫째, 원가가 올랐다.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국제유가와 환율이 함께 뛰었고, 인플레이션이 자재 전반을 밀어 올렸다. 전기로 제강의 원료인 철스크랩(고철) 가격도 상반기 내내 강세였다. 원가가 오르면 인상의 명분이 선다. 작년의 인상이 “적자를 못 견디겠다”는 호소였다면, 올해의 인상은 “원가가 이만큼 올랐다”는 통보였다. 받아들여지는 무게가 다르다.
둘째, 공급이 실제로 줄었다. 설비 폐쇄와 감산이 쌓이면서 8대 제강사의 7월 가동률은 66.4%에 머문다〔스틸프라이스, 2026.7〕. 시장은 잠깐의 감산은 믿지 않지만, 영구 폐쇄는 믿는다. 감산이 1년 넘게 이어진 데다 설비까지 사라지자 유통 재고가 말랐고, 재고가 마르자 싼 호가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오래 눌린 스프링일수록 크게 튀어 오른다.
셋째, 수출이 출구를 열었다. 올해 1분기 철근 수출은 30만 톤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4월 한 달 수출량은 1년 전의 4배를 웃돌았다〔하나증권 철강금속 위클리, 2026.4〕.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이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가격이 오를 때마다 공급이 다시 쏟아지던 악순환이 끊겼다.

4. 87만 원, 그리고 비수기
7월 유통가격은 87만 원 선이다. 6월 87만 2,000원에서 7월 87만 원으로, 올해 처음 상승세가 숨을 골랐다〔철강금속신문 가격DB, 2026.7〕. 한여름 비수기에 들어선 영향이다.
이 가격이 버틸지는 두 가지에 달려 있다. 하나는 감산의 규율이다. 과거에는 가격이 오르는 순간 제강사들의 감산이 느슨해졌고, 공급이 풀리면 가격은 다시 미끄러졌다. 다른 하나는 수출이다. 상반기 가격을 받쳐 준 수출 길이 계속 열려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반기부터 수출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물량이 막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반기 내내 강세였던 철스크랩 가격도 7월 들어 제강사들이 잇달아 구매가를 내리며 조정에 들어갔다〔스틸데일리, 2026.7〕.
원가 인상의 명분은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발주와 견적의 기준가격을 작년의 60만~70만 원대로 되돌려 잡기는 어렵다. 사라진 설비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철근 가격 상승은 수요가 살아난 신호가 아니다. 공급을 물리적으로 줄인 결과이고, 전쟁발 원가 상승이 명분을 댔으며, 수출이 구조를 받쳤다. 수요는 여전히 700만 톤 안팎의 바닥에 있다. 지금의 87만 원은 시장이 좋아진 가격이 아니라, 시장이 줄어든 가격이다.
참고자료
- 한국철강협회 철근 수급 통계 (2026.1)
- 철강금속신문 가격DB (2026.1~7)
- 스틸프라이스 (2026.7), 스틸데일리 (2026.7)
- 하나증권 철강금속 위클리 (2026.4)
공사비 분쟁, 계약서에서 끝낸다 — 2026년 도시정비법 개정
공사비 분쟁, 계약서에서 끝낸다
2026년 도시정비법 개정과 남은 숙제
1. 법원이 계약서를 들었다
2025년 말, 한 재건축 현장의 판결이 업계의 눈길을 끌었다. 대형 건설사가 계약서에 약정된 인상률의 다섯 배에 가까운 공사비를 요구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착공을 미룬 채 버텼다. 법원은 이를 ‘정당한 사유 없는 착공 지연’으로 보고 계약 위반이라고 판단했다〔하우징헤럴드·한국경제, 2025.12〕. 공사비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법원이 시공사가 아니라 사업을 맡긴 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홀로 선 사건이 아니다. 같은 방향의 흐름이 2026년 도시정비법 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사비 분쟁을 다루는 무게중심이 ‘터진 뒤 수습’에서 ‘계약 단계의 예방’으로 옮겨가고 있다.
2. 공사비는 왜 분쟁의 진원지가 됐나
배경에는 멈추지 않는 원가 상승이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건설공사비지수는 2026년 4월 136.88로 1년 전보다 4.4% 올랐다〔대한경제, 2026.6〕. 자재값과 인건비가 계약 시점보다 뛰면 시공사는 증액을 요구하고, 조합은 분담금 부담에 반발한다. 고물가가 길어질수록 충돌은 예정된 수순이 된다.
숫자가 그 규모를 보여준다. 시공능력 상위 10개 건설사가 1년 남짓한 기간에 정비사업 계약금 인상을 정정 공시한 건수만 33건이었다〔한국일보, 2025.2〕. 서울 신반포3차와 둔촌주공에서 경기 안양 호계온천까지, 지역과 규모를 가리지 않았다.
인상 폭도 가파르다. 부산시민공원 촉진4구역에서는 시공사가 3.3㎡당 449만 원이던 공사비를 1,100만 원 넘게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범천1-1구역도 539만 원에서 926만 원으로 증액을 통보했다〔KNN, 2024.8〕. 평당 공사비가 두 배 가까이 뛰면 그 차액은 고스란히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이 된다.


3.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은 장치
갈등을 막을 장치가 없지는 않았다. 정부는 ‘공사비 검증’ 제도를 두었다.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요청하거나, 증액 비율이 일정 수준(사업시행계획인가 전 시공사 선정 시 10%, 인가 후 5%, 검증 후 추가 3%)을 넘으면 조합이 한국부동산원 같은 기관에 증액의 타당성을 따져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도시정비법 제29조의2〕. 경기장에 심판을 한 명 들인 셈이다.
문제는 이 심판이 옐로카드는 줘도 퇴장은 못 시킨다는 데 있었다. 검증 결과는 따라야 하는 기준이 아니라 참고 자료에 그쳤다. 검증 요청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물릴 규정이 없었다. 의무는 있는데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계약서도 빈칸투성이였다. 많은 공사 계약이 “물가가 오르면 협의해 조정한다”는 수준에서 멈췄다. 물가를 어떤 기준으로 잴지, 설계가 바뀌면 무엇을 근거로 금액을 다시 매길지가 비어 있었다. 정부가 2024년 1월 표준공사계약서를 내놓아 검증 요청과 자료 공개를 담았지만 어디까지나 권장이었다〔머니투데이, 2025.1〕. 빈칸 많은 계약서를 두고 시공사와 조합은 협상으로 풀어야 했고, 그 협상이 순탄할 리 없었다.
4. 2026년 개정안, 무엇이 달라지나
2026년 국회는 이 빈칸을 메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국토교통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검증 기준선은 그대로 두되, 그 위에 강제력을 붙이고 분쟁을 계약 단계에서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째, 계약서에 변동의 규칙을 미리 적는다. 시공자와 도급계약을 맺을 때 공사기간·설계변경·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변동 기준, 변동 시 검증 방법과 근거 자료, 검증 결과에 따른 계약 변경 사항을 반드시 계약서에 담아야 한다. 다툴 일을 다투기 전에 규칙으로 정해 두라는 주문이다.
둘째, 증액의 근거를 문서로 요구한다. 그동안 시공사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증액 내역 공개를 거부할 수 있었다. 개정안은 증액을 요청할 때 공사비 변동 사유서와 물량 산출이 담긴 세부 내역서를 내도록 하고, 자료를 내지 않거나 거짓으로 내면 과태료를 물린다. “그냥 올랐다”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셋째, 검증 결과를 조합원 앞에 펼친다. 검증 결과는 반드시 총회에 공개해야 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증액 계약을 맺으려면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집행부가 결과를 묻어 둘 수 없다.
넷째, 제3자가 절차를 가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조합만 검증을 요청할 수 있어서, 집행부가 미온적이면 검증이 겉돌았다. 개정안은 시장·군수와 도시분쟁조정위원회도 직접 검증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국토교통부나 광역지자체는 공사비 분쟁조정단을 꾸려 현장에 보낼 수 있고, 도시분쟁조정위원회는 공사비 분쟁을 심사·조정할 수 있다. 분쟁이 사업을 멈출 위기로 번지기 전에 바깥에서 개입할 길이 열린다.
5. 계약서가 판단의 닻이 된다
서두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대구의 한 상가아파트 재건축으로, 사업을 맡긴 쪽은 신탁회사였고 시공은 대형 건설사가 맡았다. 계약서에는 착공 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기준으로 공사비를 조정한다는 조항과 인상률이 정해져 있었다. 계약상 인상률은 8.42%였다. 그런데 건설사는 총 공사대금의 40%, 그중 물가 명목으로만 32%를 더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착공을 미뤘다〔하우징헤럴드, 2025.12〕.
법정에서 건설사는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삼은 조항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약 당시 그 조항에 동의했다는 이유였다. 법원이 더 무겁게 본 대목은 약정을 크게 넘는 증액을 요구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착공을 미룬 점이다. 법원은 이를 계약 위반으로 보고 건설사에 133억 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판결의 핵심은 계약서에 물가 기준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는 데 있다. 그 덕분에 법원은 건설사의 요구가 약속을 넘어섰는지 가릴 수 있었다. 계약서의 기준이 분쟁에서 판단의 닻이 됐다. 2026년 개정이 계약서에 변동 기준을 못 박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 공사가 깊어지면 칼자루가 넘어간다
다만 이번 개정이 모든 빈칸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 한계는 두 사건이 정반대로 흘러간 이유를 보면 드러난다. 대구 상가에서는 발주처가 이겼지만, 둔촌주공에서는 시공사가 공사를 멈추고 유치권을 행사하며 칼자루를 쥐었다. 같은 공사비 갈등인데 결과가 갈렸다. 차이는 공사가 어느 단계였느냐다.
유치권은 공사대금을 받을 때까지 현장을 붙잡아 두는 권리다. 시공사가 현장을 점유하고 있고, 그 공사로 생긴 공사대금 채권이 남아 있어야 성립한다〔민법 제320조〕. 대구 상가의 건설사는 착공조차 하지 않았다. 붙잡을 현장도, 받을 공사대금도 없었다. 버틸수록 착공 지연이 계약 위반이 됐다.
반대로 둔촌주공은 공정률이 52%에 이른 상태였다. 시공사는 큰돈을 들인 채 현장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에 유치권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쥘 수 있었다. 공사가 깊어질수록 시공사의 협상력은 커진다.
물론 유치권이 만능은 아니다. 공사가 멈추면 시공사도 지체보상금과 금융 비용을 떠안고, 실무에서는 대출 조건으로 유치권 포기각서를 미리 받아 두기도 한다. 둔촌주공 역시 시공사가 이겼다기보다, 양쪽 모두 큰 피해를 입은 끝에 서울시 중재로 봉합됐다.
개정안은 계약과 검증, 정보 공개에 초점을 맞춰 착공 전과 계약 단계의 분쟁에 힘을 쓴다. 시공사에게도 버티기 대신 증액 사유를 문서로 입증하고 검증을 밟을 길을 열어, 무리한 공사 중단의 유인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검증 결과에 불복해 공사를 멈추는 행동까지 막는 ‘공사 계속 의무’는 아직 법에 없다. 공사가 깊어진 뒤의 분쟁은 여전히 힘의 논리에 맡겨져 있다.
7. 리스크는 계약서로 당겨졌다
공사비 제도의 중심축이 사후 해결에서 사전 설계로 옮겨가고 있다. 리스크가 터지는 시점도 앞당겨졌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착공 뒤 증액 요구가 들어온 다음에 갈등이 터졌다. 이제는 시공사를 뽑고 계약서를 쓰는 순간이 분쟁의 향방을 좌우한다.
물가 변동에 대한 대비와 설계변경의 처리는 이제 계약서의 문장으로 관리해야 한다. 잘 쓴 계약서 한 장이 분쟁의 절반을 미리 끝내 둔다.
[후속 정보] (본회의 통과 시) 2026년 ○월,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후속 정보] (계류 중이면) 2026년 9월, 공사비 검증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업시행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별도로 발의됐다.
참고자료
-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9조의2, 민법 제320조
- 하우징헤럴드·한국경제 (2025.12), 한국일보 (2025.2), 머니투데이 (2025.1), KNN (2024.8), 대한경제 (2026.6)
26.06 원도심 생활밀착형 체육관 건립공사(ROC-S1 논슬립커플러)





노란봉투법은 건설업의 문제다

노란봉투법은 건설업의 문제다
1. 논쟁은 대기업 파업에 쏠려 있지만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번 파업이 노란봉투법과 관계가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거셌다. 한쪽에서는 노란봉투법의 핵심이 사용자 범위 확대(노조법 2조)인데, 삼성전자 직원은 정규직이라 관련이 없다고 본다. 다른 쪽에서는 손해배상 책임 완화(노조법 3조)로 파업 자체가 잦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치·경제적 입장에 따라 갈리는 쟁점이다. 그런데 정작 이 법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 곳은 따로 있다. 건설업이다. 건설 공사는 기본적으로 원청과 하청의 사슬로 굴러간다. 원청과 하청 노조 사이에 새로 놓인 교섭의 다리가 가장 빨리 작동한 산업이 건설업이라는 사실은 숫자로 확인된다.

2. 왜 건설업이 직격탄인가
전문건설업의 최근 3년 평균 계약금액은 115조 5천억 원이다. 그 가운데 하도급이 79조 1천억 원으로 68.5%를 차지한다. 원도급의 두 배가 넘는다. 전문건설업의 본업 자체가 누군가의 하청이다. 매출 100억 원 미만 업체가 96%에 이를 만큼 규모도 작다〔데일리머니, 2026.5.23〕.
전문건설 업종 가운데 등록 업체가 가장 많은 곳은 철근·콘크리트공사업으로 1만 3,347개사다. 거푸집, 철근 가공, 콘크리트 타설처럼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업종이다. 노조도 가장 두텁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산하 플랜트건설노조와 전국건설노조가 각각 5만 명 안팎이고, 그중 철근·콘크리트 관련 조합원은 3만~4만 명으로 추정된다〔RICON FOCUS Vol.19, 2026.5〕.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두텁고, 한 현장에 수십 개 협력업체가 얽혀 있고, 노조가 조직돼 있으며, 공기가 늦어지는 순간 비용이 되는 산업. 사용자 범위 확대가 효과를 낼 조건이 한꺼번에 갖춰진 곳이다.
숫자도 이를 보여준다. 법이 시행된 3월 10일, 전국건설노조는 시공능력 상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97곳에 교섭을 요구했다. 시행 한 달 동안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민간 부문 교섭 요구 215건 가운데 건설업이 123건, 57.2%였다. 실제로 교섭 테이블이 꾸려진 22곳 중에서도 건설업이 10곳으로 가장 많았다〔중앙일보, 2026.4.10〕.

3. ‘안전에서 임금으로’: 같은 현상, 두 가지 해석
경영계의 시각: 안전으로 들어와 임금으로 나간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의 원청 대상 공문은 8쪽이다. 교섭 의제로는 ‘산업 안전 보건’을 앞세웠다. 그런데 뒤에 붙은 단체협약 요구안 첫 조항은 노조를 “협력업체 노동자를 대표해 임금 및 단체협약, 산업안전 등에 대해 교섭하는 단체”로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10대 건설사 자문을 맡은 한 변호사는 원청의 사용자성이 노동위원회에서 예상보다 쉽게 인정되고 있다며, 안전으로 시작한 교섭이 다른 요구로 끝없이 넓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임금을 직접 교섭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더라도, 작업 방식·근로시간·안전을 매개로 사실상 임금 인상 효과를 끌어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안전을 입구로, 임금을 출구로 삼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노동계와 학계의 시각: 안전과 임금은 한 동전
노동계는 건설업 구조 자체가 안전과 임금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만든다고 본다. 한 현장에 수십, 수백 개 협력업체가 얽힌 구조에서는 단가를 맞추려고 안전 인력과 장비부터 줄이는 악순환이 생긴다. 안전은 결국 비용의 문제라는 현실론이다.
그동안의 안전 정책은 비용을 건드리지 않고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처벌만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통계도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로는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소규모 현장의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이후에도 오히려 늘었다. 이 시각에서 보면, 노조가 안전을 입구로 임금을 꺼내는 모습은 전략이 아니라 구조가 낳은 결과다.
적정 인원, 적정 공기, 적정 안전 장비를 갖추려면 단가가 올라야 하고, 단가가 오르면 임금 여력이 생긴다. 노조 요구안 앞머리에 ‘최저가 입찰제 금지’가 올라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두 해석은 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쪽에서 본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읽든, 결론은 비용으로 모인다.

4. 청구서는 어디로 가는가
원청이 노조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더라도, 그 비용을 누가 낼지는 별개 문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4월 아파트 현장 중심의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 임직원 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 그 방향을 보여준다〔RICON FOCUS Vol.19, 2026.5〕.
응답 업체의 87.7%가 법 시행에 따른 가장 큰 부담으로 추가 공사비와 인건비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원청의 교섭 부담과 책임이 하도급업체로 넘어올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원청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선택은 공기는 지키고, 책임은 하청에 넘기는 길이다.
현행 하도급법은 부당특약을 금지하고 무효로 한다. 그러나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와 쟁의에 따른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특약은 명시된 유형에 들어 있지 않다. 원청과 하청 노조의 교섭이 길어지면 일부 공정에서 쟁의가 생기고, 그 공정에 물린 다른 작업까지 멈춘다. 공기가 늦어지면 돌관공사와 추가 인건비가 붙고, 공사비가 오른다. 그 끝은 분양가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의 분담금, 입주 일정이다.

5. 정리
물론 지금이 최종 상태는 아니다. 사용자성 판단 매뉴얼, 하도급대금 조정 제도, 부당특약 명문화까지 보완 입법이 여러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노란봉투법의 파급력이 가장 큰 산업은 건설업이다.
둘째, ‘안전에서 임금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노조의 협상 전략으로도, 다단계 하도급과 최저가 낙찰이 만든 구조의 결과로도 읽힌다. 두 해석은 서로 떼어 놓기 어렵다.
셋째, 비용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서 분담금과 분양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보완 입법이 그 흐름 가운데 어느 지점을 막을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참고자료
- 중앙일보 (2026.4.10)
- 대한건설정책연구원, RICON FOCUS Vol.19 「노란봉투법에 따른 건설 하도급업체 영향 및 개선 방안」 (2026.5)
- 데일리머니 (2026.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