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충격, 누가 어떻게 버티나
레미콘에서 발주처까지
건설 원자재 가격 문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 칼럼에서도 2월부터 원자재 문제를 연이어 다뤄 왔다. 봄은 보통 분양 성수기이고 건설 경기도 살아나는 계절이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원가 충격은 건설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닿지만, 버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레미콘 업계, 전문건설사, 종합건설사, 발주처의 움직임을 차례로 살펴본다〔대한전문건설신문·철강금속신문, 2022년 3월 건설경제동향보고서 참고〕.
1. 레미콘: 원료도, 운송도 오른다
레미콘 가격은 이달 약 13% 올랐다. 시멘트를 굽는 데 쓰는 러시아산 유연탄 가격도 1분기보다 50% 뛰었다.
운송 쪽도 흔들린다. 레미콘 운송 기사들이 운송비 인상을 요구하며 5월 9일부터 운송을 멈췄다. 업계는 100곳이 넘는 대형 현장을 포함해 수천 곳의 현장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한다. 다행히 부산·경남 일부 지역과 제주에서는 협상이 타결돼 운송이 곧 정상화될 전망이다.
2. 전문건설사: 가장 아래에서 가장 크게 맞는다
가장 힘든 쪽은 전문건설업체다.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1년 전보다 30~50% 올랐다. 크레인과 굴착기 같은 장비 임대료도 10% 넘게 올랐다.
그런데도 원청과의 계약서에는 ‘공사비 증액 불가’, ‘물가 변동에 따른 금액 조정 금지’ 같은 특약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재업체는 오른 원가를 납품가에 반영하는데, 전문건설사는 그 오른 값을 원청에 넘기지 못한다. 위에서 받은 비용을 아래로 넘길 수 없는 자리다.
결국 실력 행사로 이어졌다. 호남·제주 지역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은 지난 4월 200여 개 현장의 공사를 멈췄고, 5월에도 일부 현장에서 작업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3. 종합건설사: 계약서를 다시 묻는다
그동안 미온적이던 종합건설사들도 사태가 심각해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업계는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금지’ 특약이 정당한지 국토교통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국토부는 이런 특약이 한쪽에 현저히 불리하다면 건설산업기본법상 부당특약으로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관급공사는 법령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 물가가 오르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공사 계약에는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법원은 그동안 이런 특약을 유효로 본 사례가 많다. 행정 해석과 법원 판단이 엇갈리는 사이, 오른 원가를 누가 질지는 여전히 계약서의 문구와 협상력에 달려 있다.

4. 발주처: 분양 일정을 늦춘다
지난해 뜨거웠던 청약 열기도 한풀 꺾였다. 시행사들은 분양 대금 일부를 대출로 돌려주는 등 계약 조건을 완화하며 수요자를 붙잡고 있다. 정비사업에서는 시공사 입찰에 건설사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사례도 나온다. 오른 공사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신호다.
분양가 상한제 개편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예 분양 일정을 미루는 곳도 늘었다. 분양가 상한제는 택지비, 기본형 건축비, 가산비를 더한 금액 이하로 분양가를 묶는 제도다. 원자재값이 이렇게 뛰는 시기에는 상한선이 현실의 원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업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고, 국토교통부는 관계 부처와 개선안을 협의하고 있다.
원가 충격은 사슬을 따라 내려온다
네 주체를 나란히 놓으면 흐름이 보인다. 원가 상승은 자재업체에서 시작해 계약 사슬을 따라 아래로 내려온다. 각 고리는 계약서와 협상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비용을 넘긴다. 그리고 더 넘길 곳이 없는 자리에서 현장이 멈춘다. 물가 변동을 계약에 반영하는 규칙이 분명해지지 않는 한, 같은 장면은 원가가 오를 때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후속 정보] 2022년 6월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개편해 정비사업의 이주비·명도소송비 등을 가산비에 반영하고, 자재값 급등 시 기본형 건축비를 수시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2023년 10월에는 원자재 가격 변동을 하도급 대금에 반영하는 납품대금 연동제가 시행됐다.
참고자료
- 대한전문건설신문, 철강금속신문 (2022.3~5)
- 대한건설협회, 2022년 3월 월간건설경제동향보고서

